청리움 소식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명당의 귀혈(貴穴), 청리움과 봉천암 - 안영배 풍수학 박사

2026.04.13

 

 

● 봉황: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서로운 새

 -‘새 중의 왕은 봉황이요, 꽃 중의 왕은 모란이요, 백수의 왕은 호랑이‘라는 말처럼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봉황은 고대로부터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일컬어져왔다.
 -봉황은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성인(聖人) 혹은 성군(聖君)의 탄생과 함께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봉황이 출현할 경우 어떤 이가 권력을 행사하든 그의 통치 시대는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믿음이 전승돼 왔다.
-봉황은 혼자 날지 않는 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봉’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황’이 항상 짝을 지어 날아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속담처럼 ‘봉 가는데 황 간다’는 말이 있다. 봉황은 늘 함께 한다는 의미로 부부금슬을 상징하기도 한다.

 

 

 

 

● 봉황에 대한 기록

 -중국에서 요순시대는 태평성대(太平聖代)와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시대이다. 바로 이 시기에 하늘이 성군이 베푼 선정을 칭송하는 징표로 봉황을 출현케 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봉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단혈산(丹穴山)에 봉황이 사는데, 이 새는 길조와 인애(仁愛)의 상징이며, 사람 사는 곳에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중국 당나라 때 문장가 한유(韓愈:768-824)가 지은 『송하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새 중에 봉황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나타난다.”
-전국시대 역사서 『죽서기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봉황이 황제헌원과 요(堯)ㆍ순(舜)ㆍ주(周) 임금 때 출현하여 춤을 추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봉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봉황은 더할 수 없는 훌륭한 정치가 일어날 때 ‘임금의 어진 정치에 하늘이 감응해서 나타난 길한 징조[서응(瑞應)]’인데, 이는 태평성대의 아름다운 일을 상징하며, 순(舜)임금과 문왕(文王) 같은 덕이 있어야만 봉황새가 와서 춤추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세종대왕은 나라에 공식적인 연회가 있을 때 왕가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송축가(頌祝歌)를 지어 불렀는데, 그 가사를 봉황음(鳳凰吟)이라고 하였다. 봉황음은 조선 세종 때 윤회(尹淮:1380-1436)가 지은 것이다.

 

 

 

 

● 봉황과 용은 격이 다르다

우리 선조들은 왕의 상징으로 용보다는 봉황을 더 선호했다. 이는 용과 봉황에 대한 전설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 있는 전설을 보면 용은 권력, 출세, 일확천금의 기운을 안겨주는 신수(神獸)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소한 실수와 무관심에 대해서 용서를 하지 않는 잔인함을 보인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주민을 몰살하거나 마을을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용을 무찌른 장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승돼 오기도 했던 것이다.
 반면 봉황은 그 어떤 전설에서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람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거꾸로 봉황의 쉼터인 오동나무와 그 먹이인 대나무를 베어버려 봉황이 찾아오지 않게 돼 더 이상 그 마을이나 지역에서는 인재가 배출되지 못했다는 전설은 많다.
 봉황은 따스함을 품고 감동을 주는 존재다.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주는 하늘의 전령사인 것이다.

 

 

 

 

 

봉황과 관련된 지역의 전설

 

봉황의 전설이 전해져오는 지역이나 산에서는 봉황을 닮은 지형을 발견할 수 있고, 오동나무와 대나무 등으로 봉황이 찾아오도록 유도한 지명(地名)이 발견된다.

청리움안에 봉황의 쉼터인 오동나무를 뜻하는 梧河산방이 들어선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 설악산 봉정암의 봉황 전설

신라 선덕여왕 시기인 644년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뇌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기 위해 여러 곳을 순례했지만 적당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한곳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하늘에서 아름다운 빛을 내는 봉황이 자장율사 앞에 나타났다. 자장율사는 날아가는 봉황을 뒤쫓았다. 봉황은 어느 높은 봉우리를 선회하다가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봉황이 선회한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부처의 모습이었고, 봉황이 사라진 곳은 부처의 이마에 해당했다. 자장율사는 부처 형상을 한 바위에 뇌사리를 봉안하고 오층석탑을 세웠는데 바로 봉정암(鳳頂庵)이다. 봉정암은 봉황이 부처의 이마로 사라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한국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 영주 부석사의 봉황 전설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의 명당터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절을 세울 때 산적들의 행패가 심했다. 이때 의상대사를 사랑한 중국 여인 ‘선묘낭자’가 나타나더니 번개를 일으키며 산적들에 대항했다. 이에 산꼭대기에서 봉황이 날아와 큰 바위를 세 차례나 공중에 들었다 놓으면서 산적을 물리치는데 힘을 보탰다. 산적들은 낭자와 봉황의 도움을 받는 의상대사의 도력에 감복해서 절을 짓는 데 일조했다. 의상대사는 절이 완성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부석(浮石)’이라 지었고, 부석사가 위치한 산 이름도 봉황이 나타났다고 해서 봉황산이라고 불렀다.

 

 

 

 

● 가평 보리산의 봉황 전설

우주에서는 가끔 산 자와 죽은자, 혹은 지구와 다른 별세계가 교신할 수 있는 시간대인 우주의 틈이 열린다. 정신 수양을 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 틈을 발견한 이들이 가끔 있다.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과 신라 승려 원효대사, 통일신라말의 도선국사, 고려의 나옹선사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우주의 열린 틈을 이용해 가끔 지구로 날아드는 봉황이 있다. 지구 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지구별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경우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발견한 봉황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 봉황은 우주의 열린 틈을 타 일찌감치 한반도에 내려온 뒤 지리산 천은사, 강원도 고성 건봉산 등지로 옮겨다니다가 최종으로 가평 보리산 봉천암(鳳天岩)에 안착했다. 이곳이 태평성세의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리산 봉천암의 봉황은 부석사 선묘낭자 일화처럼 여성의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신라의 원효대사 시기부터 화작보살(華작(族+鳥)菩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봉황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는 위대한 지도자의 탄생을 알리는 신조(神鳥)이다.

 

 

 

 

지도로 볼 때 설악면 창의리 및 엄소리 쪽이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고 갈곡리 일대가 오른쪽 날개에 해당한다. 양평군에 속하는 봉미산(鳳尾山) 일대는 이름 그대로 봉황의 꼬리가 된다. 보리산의 청리움은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는 귀혈(貴穴) 터에 해당한다. 즉, 보리산은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봉황이 알이 있는 둥지로 돌아오는 형)의 명당 터다.

 

 

*청리움 보리산에 위치한 봉천암(鳳天庵)

 

 

 

[출처] 안영배 풍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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